Recent Posts
Recent Comments
Archives
Today
Total
05-20 21:03
관리 메뉴

이것저것 잡동사니

[해외여행] 전쟁 중인 러시아 여행 - 1. 동해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본문

리뷰/여행

[해외여행] 전쟁 중인 러시아 여행 - 1. 동해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Park Siyoung 2023. 10. 28. 17:28
반응형

1. 전쟁 중인 러시아를 간 이유

  올해 1월 말, 나는 러-우 전쟁이 한창인 러시아로 홀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내가 대학교에 입학하던 해에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어 해외여행길이 모두 막혀버렸기 때문에 4학년이 되어서야 대학생 신분으로 첫 해외여행을 가게 된 것이다.
  목적지를 러시아, 정확하게는 2~3월의 시베리아 중부에 있는 바이칼 호수로 정하게 된 이유는 코로나가 한창인 202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학교를 가지 못하고 집에서 원격 강의만 듣던 나에게 굉장히 흥미로운 뉴스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혜성 니오와이즈가 지구에 근접하고 있으며, 육안으로 관측이 가능할 정도의 밝기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
 

  평소 물리학에 관심이 많던 나는 천문학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혜성을 직접 보고 카메라로도 찍어보고 싶었다. 카메라라고는 스마트폰 카메라밖에 없었기 때문에 중고나라를 뒤져가며 가격이 괜찮은 750D라는 캐논 DSLR을 샀다. 그리고 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무작정 황령산 전망대에 올라가서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당시 카메라와 별 사진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혜성을 포착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나는 카메라에 관심을 가지고 사진을 본격적인 취미로 삼기 시작했다.
  풍경 사진을 찍을 장소들을 검색하던 나는 AirPano라는 파노라마 사진이 업로드되는 사이트에서 파노라마 사진을 한 장 보게 된다.
 

  투명한 얼음 바닥과 노을이 어우러진 이 사진은 내 머릿속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사진이 찍힌 장소를 보니 시베리아 중부에 있는 바이칼 호수였다. 그 후로 바이칼 호수와 관련된 유튜브 영상과 글들을 찾아보며 겨울이 오면 꼭 여기에 가서 사진을 찍으리라고 다짐했다.
  2022년 말, 팬데믹이 어느 정도 진정이 된 후 이제는 여행을 갈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던 찰나, 이번에는 러-우 전쟁이 터지게 되었다. 하지만 전선은 호수로부터 서쪽으로 수천km 떨어진 곳이며 나는 내년에 육군 소위로 임관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해 여행길에 오기로 결심했다. 내 주변 모두가 나를 말렸지만 모험을 좋아하는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하나씩 하나씩 준비해갔다.
 

반응형

 

2. 여행 계획

  세세한 계획은 글을 써가면서 언급을 할 예정이고, 내 머릿속에 있었던 대략적인 계획은 다음과 같다.
 
    1. 동해항 → 블라디보스토크로 (배편)
    2. 블라디보스토크 → 이르쿠츠크 (시베리아 횡단철도)
    3. 이르쿠츠크 → 바이칼 호수 (버스)
    4. 바이칼 호수 위에서 텐트를 치면서 돌아다닌다
    5. 바이칼 호수 →  이르쿠츠크 (버스)
    6. 이르쿠츠크 → 몽골 (국제 열차)
    7. 몽골 → 인천 (비행기)
 
  물론 이건 계획일 뿐이었고 중간중간 계획이 변경되었었다. 특히, 러-우 전쟁 영향으로 대부분의 예약 사이트가 VPN을 사용하지 않으면 접속도 안될 뿐 아니라 한국에서 발급받은 신용카드의 사용이 불가했다. 또한 귀국을 몽골을 통해서가 아닌 태국을 통해서 하게 되었다. 나중에 차차 설명하도록 하겠다.
 

3. 블라디보스토크로!

  한국에서 러시아로 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비행기로 가는 것이고 또 하나는 배를 타고 가는 것이다. 비행기는 러-우 전쟁으로 인해 이르쿠츠크 직항편이 사라졌고(환승으로는 가능) 배편은 2022년 말 부터 다시 운행이 시작되었다.
  비행기는 많이 타봤으니 배와 기차로 이동해보고 싶어서 나는 배편을 선택했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정말 고생을 사서 하는 것 같다. 배편은 두원상선 홈페이지에서 예약했다.

 
 생각보다 표가 빠르게 나가서 남아있는 등급을 아무거나 집었더니 창문 없는 2등석을 예매하게 되었다. 코로나 전에는 30만 원대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전쟁할증까지 붙어서 편도 70만원이나 했다. 1년이 지난 지금은 가격이 조금 내린 것 같다(2023.12.09 기준 66만원). 티켓 가격은 두원상선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운임 가격표)
  신용카드 할부로 결제를 원할 경우 두원상선에 전화하면 이메일을 통해 할부로 결제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리고 예매 시 좌석 등급은 선택이 가능한데 정확한 자리 위치는 선택할 수 없다. 당일에 티켓을 발급받을 때 무작위로 정해준다.
 
 

반응형

 

 
  배를 타고 러시아로 들어가는 사람이 생각보다 엄청 많았다. 한국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고향으로 돌아가는 러시아 사람들이었다. 
  비행기 탈 때 수속하는 것 처럼 수하물 무게를 재고 표를 받는다. 강원도에 사는 고모부 말씀으로는 비행기와 달리 수하물 무게가 2kg 정도는 오버되어도 괜찮다고 한다. (수하물 규정)
  나는 텐트, 침낭, 핫팩, 식량 등등을 다 챙겨가서 무게가 꽤 무거웠는데도 총 25kg이 조금 안 되었다. 그렇지만 캐리어가 아니라 100L짜리 등산용 백팩을 메고 가서 여행 내내 어깨가 빠지는 줄 알았다. 이제 대충 현지 마트에서 어떤 걸 파는지 아니까 다음에는 식량 같은 건 현지에서 공수하는 걸로...
 


  티켓을 받고 나면 엑스레이로 짐 검사를 하고 출국 심사를 한 후 배에 올라타게 된다. 전체적인 과정은 비행기 타고 해외에 나가는 것과 동일하다. 대신 공항에 비해 좀 대충대충 한다는 느낌이 있다.
 

반응형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티켓 검사 후에 내부로 들어가게 된다. 비행기 탈 때와 달리 긴 계단을 올라야 해서 짐이 무거운 몇몇 사람들이 낑낑거리면서 올라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내 객실은 한 방에 8명이 들어가고 2층 침대로 되어있었다. 침대마다 커튼과 조명이 다 달려있었다. 학교 기숙사처럼 널널한 2층 침대는 아니고 구부리고 있으면 앉을 수 있을 정도의 높이였다.
  아, 그리고 짐을 넣는 곳이 따로 없었다. 그래서 가방 크기가 꽤 되었는데도 그냥 발쪽에다 쑤셔넣어놨었다. 작은 캐리어는 괜찮을 것 같은데 큰 캐리어를 들고 탔는데 침대 1층이 아니면 그것대로 난감할 것 같다. 1층 사람에게 양해를 구하고 바닥에 두면 될 것 같기도? 근데 대부분 러시아 사람이라 양해를 구하려면 번역기 다운해서 가야 한다.
 

 
  원래는 24시간 후에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는데 풍랑주의보가 발효되어서 외항에 정박해있다가 다음 날 8시쯤 되어서야 출발했다. 뭐... 생각보다 흔들림이 적어서 다행이었고 횡단열차나 숙소 등을 예약하지 못하는 상황이어서 다행이었다. 모든 것들을 예약해 둔 상황이었다면 인터넷도 안 되는데 취소도 못하고 생돈 날릴 뻔 했다. 그리고 24시간에 70만원이나 하는 배인데 반나절을 꽁으로 더 탔으니 35만원을 벌었다는 생각으로 그저 행복하게 배 구경이나 하고 다녔었다.
 

 
 

반응형


  짐을 침대에 두고 3층 데크로 나와서 바람도 좀 쐬고 바깥 구경도 했다. 마침 객실이 3층이라서 왔다갔다 하기도 편했다. 탁 트인 공간이라 경치 구경하기도 좋고 바람 쐬기도 좋아서 배를 타는 내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였다. 특히 여기는 일출/일몰 맛집(잔다고 안 보면 진심 후회한다)이다. 흡연자들은 여기로 나와서 담배를 피고 들어갔다.
  물론 마냥 평온하지만은 않았고 바람이 엄청 불 때면 찬 공기 + 강풍 때문에 넥워머 없이는 숨도 잘 쉬어지지 않을 때도 있었다. 바람 쐬러 나올 때는 장갑이랑 넥워머는 필수로 착용하고 나와야 했다. 그래도 따분한 객실보다는 좋았다. 여기에서 일출이나 일몰을 구경하면서 영어가 가능한 몇몇 사람들이랑 대화도 해볼 수 있었다.
 

 
  배 내부는 대충 이렇게 생겼다. 인테리어가 중부아시아 스타일(?)이었다.
 

 

반응형

 
  외항에 정박하고 있을 때 저녁식사 안내방송이 나와서 고민고민 하다가 식권을 사서 먹었다. 저녁은 15,000원이었고 원화로 결제가 가능했다. 러시아 돈으로는 안 되는 것 같았다. 배에 사람은 많고 식사 시간은 짧은데 식권 발급하는 곳은 한 군데밖에 없어서 밥을 먹을 예정이라면 빨리 가서 먹는 게 최고인 것 같다.
 

 
  식당쪽에는 전부 동남아 국적 직원분들이 근무하는 것 같았다. 식권 발급 후에도 식당에 들어가려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아마 의자 수가 한정되어있어서 그런 것 같다. 나간 인원 수 만큼 들여보내는 식으로 인원 수를 조절하기 때문에 얼마나 기다려야할 지 모른다. 그래서 마감 시간이 다 되어서 가면 못 먹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음식 퀄리티가 15,000원 가치가 있는지는 음... 잘 모르겠다. 배 위에서는 모든 것이 비싸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밥을 먹고 나왔다. 그리고 나머지 끼니는 한국에서 가져간 다이제 초콜릿으로 때웠다.
 

 
  저녁을 다 먹고 데크에 나가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바람 좀 쐬다가 객실에 들어가서 일찍 잤다. 이 때 까지는 외항에 정박해 있다 보니 동해항 항구 불빛이 보였다. 바람이 엄청나서 귀가 떨어질 것 같아 오래 있지는 못했다.
 

 

 

반응형

 
  더 돌아다니지 않고 일찍 잠에 든 이유는 다음날 아침 일출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나는 이 선택이 러시아 여행에서 가장 잘 한 선택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본 일출 중 가장 아름다웠다. 풍랑주의보가 지나간 후라서 일출이 더 예뻤던거일지도...
 

 
  블라디보스토크항에는 꽤 이른 시간에 도착했는데 9시부터 입항이 가능해서 바다 위에서 대기했다. 미리 짐을 다 싸놓고 데크로 나가 주변 구경을 했다. 바닷물이 다 얼어있는걸 보고 신기하기도 하면서 '내가 진짜 러시아에 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 멀리 블라디보스토크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졸로토이 대교(Золотой мост)의 불빛도 보였다. 

 

반응형

 
  당시 -18도 정도 되었는데 바닷바람까지 불어서 그런지 더 춥게 느껴졌다. 배 안에서 커피를 한 캔 사서 데크로 나갔는데 입구에 묻은 커피가 얼어붙을 정도였다. 장갑도 끼고 나갔는데 추위가 그대로 느껴졌다.
 

 
  해가 뜨면서 항구의 모습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태평양으로 바로 나갈 수 있는 항구라서 그런지 정박해있는 군함들도 볼 수 있었다.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니 군인이 총을 들고 보초를 서고 있는 건물이 있었는데 나중에 검색해보니 러시아 해군 태평양 함대의 본부였다.
  여튼 블라디보스토크 바다 위에서 보는 일출도 굉장히 아름다웠다. 기존 여객선 운항 스케줄대로면 볼 수 없었을 풍경인데 풍랑주의보 덕분에 운항 일정이 변경되어서 이런 풍경도 볼 수 있었다. 여러모로 운이 좋았던 듯!

 

반응형

 
  블라디보스토크 항구의 건물도 보이기 시작했다. 러시아어 알파벳만 간신히 읽을 수 있는 러시아어 실력을 가지고 갔었는데, 건물 옥상 간판의 ' Владивосто́к(블라디보스토크)'를 읽고 엄청 들떴었다.
 

 
  항구의 다른 모습들도 굉장히 이국적이고 멋졌는데 그 중 가장 으뜸은 범선이었다. 정말 영화에서나 보던 그런 큰 범선이 정박해있길래 입이 떡 벌어졌었다. 다음에 또 방문했을 때 저 범선이 있다면 찾아가서 한 번 태워달라고 부탁해보고싶다. 그때까지 러시아어 열심히 공부해야겠다.
 

 

반응형

 
  하선할 시간이 되니 1층 사람들부터 하선하기 시작했다. 나는 꼭대기층인 3층이어서 1시간 정도 더 기다린 후에 하선했었다. 정말정말 지루할 뻔 했는데 3층에 있던 한국 사람들과 이야기도 하고 같이 사진도 찍었다. 이 때 만난 분들 중 한 분과 블라디보스토크를 같이 돌아다니면서 밥도 얻어먹고 신기한 곳에도 가 보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유학 중인 또래 친구 두 명과도 친해질 수 있었다.
 

 
  배에서 내려서 건물로 들어가면 거의 바로 입국 수속을 하게 된다. 다른 국가와 다른 특이한 점은 입국 수속 시 여권 크기 만 한 흰 종이를 주고 거기에 싸인을 하라고 한다. 그 종이를 여권과 함께 잘 보관해야 한다. 잃어버리면 끝장이다. 흰 종이는 출입국증명서인데, 숙박업소에 묵을 때나 경찰의 불시 검문 시 제출해야 한다. 특히 저게 없으면 출국을 할 수가 없다. 잃어버려도 해결 할 방법이 있다고 하긴 하는데 굉장히 까다롭다고 한다... 한국의 행정 절차 서비스와 속도를 생각하면 안 된다. 괜히 따로 보관하거나 주머니에 쑤셔넣지 말고 여권에 끼워 둔 채로 여권과 함께 잘 보관하도록 하자.
  입국 수속을 끝내면 블라디보스토크 시내로 들어올 수 있다. 나가는 길이 좀 복잡해서 길을 잃을 뻔 했는데 앞사람 보고 쫄래쫄래 잘 따라가니 나올 수 있었다. 영어 안내가 없어서 러시아어를 모르는 상태로 길을 잃으면 당황할 수 있는데 다운로드 해 간 번역기 들고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면 안내해준다. 러시아 사람들 표정은 무뚝뚝한데 엄청 친절하다..!
 

 
  이렇게 내 러시아 여행이 시작되었다.

반응형
Comments